[대한민국을 흔든 판결들] "골목상권 위해 마트 영업제한 타당"…소비자 권리 침해는 문제

입력 2017-06-30 18:50   수정 2017-07-01 12:14

<9> 대형마트 영업제한 논란
(대법원 2015년 11월19일 선고, 2015두295 전원합의체 판결)




현재 농수산물 매출액 비중이 55% 미만인 대형마트와 그 임대매장인 병원 식당 미용실 사진관 등의 부설 점포, 기타 준대규모 점포는 영업시간이 제한되고 의무휴업이 강제되고 있다. 국회가 ‘경제민주화’ 바람을 타고 2012년 1월 유통산업발전법(12조의 2)에 대형마트 등의 영업을 제한하는 규정을 신설했기 때문이다. 시장·군수·구청장이 건전한 유통질서 확립, 근로자의 건강권, 대규모 점포 등과 중소유통업의 상생 발전을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에 대형마트 등에 자정부터 오전 8시까지 범위에서 영업시간을 제한할 수 있고, 원칙적으로 공휴일 중에서 매월 1일 이상 2일 이내의 의무휴업을 명할 수 있다는 내용이 추가됐다. 이듬해 4월에는 ‘월 2회 휴일 의무휴업, 자정~오전 10시 영업금지’ 등 규제를 강화한 재개정안이 시행됐다.

2012년 2월 전주시가 자치단체로는 처음으로 대형마트 영업규제 조례를 개정하면서 전국으로 확산됐다. 서울시 동대문구청장과 성동구청장은 그해 11월 제정된 조례를 근거로 매일 자정부터 오전 8시까지 대형마트의 영업을 제한하고 매월 2, 4주 일요일을 의무휴업일로 지정했다(2014년 8월에는 영업시간 제한을 자정부터 오전 10시까지로 확대). 이에 롯데쇼핑, 이마트, 홈플러스, GS리테일 등(원고)은 위 구청장들(피고)을 상대로 “영업제한 처분이 적절히 재량권을 행사하지 않고 최대 한도로 영업을 제한하는 것이어서 위법하다”는 등의 이유로 ‘영업시간 제한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2013년 9월 1심에서는 대형마트 영업제한이 적법하다고 판결했는데 이듬해 12월 항소심에서 서울고등법원은 “영업규제가 전통시장에 도움이 안 되고 소비자의 선택권을 제한한다”며 원고 승소 판결했다. 그러나 대법원(2015년 11월19일 선고, 2015두295 전원합의체 판결)은 원심을 파기하고 구청장들의 처분이 적합하다고 판결했다.

이 사건의 쟁점은 첫째 원고가 대형마트에 해당하는지, 둘째 대형마트에 대한 영업제한 처분이 임대매장에까지 적용되는지, 셋째 피고의 처분행위가 서비스교역에 관한 일반협정(GATS) 및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위반인지, 넷째 피고가 영업제한의 시간과 일자를 완화하는 재량권을 행사하지 않고 법규에 정한 최대 한도로 제한 처분을 한 것이 재량권 불행사·해태(게을리함)에 해당하는지와 비례원칙에 위반하는지 여부였다.

대형마트 손 들어준 高法

원심(서울고등법원)은 위 각 쟁점에 대해 다음과 같이 판시했다. 첫째, 법조문상 대형마트는 ‘점원의 도움 없이 소비자에게 소매하는 점포의 집단’이라고 돼 있는데, 이 사건 처분 대상 기업은 ‘점원의 도움을 받아 소매하는 점포’이므로 대형마트에 해당하지 않고 따라서 피고의 행정처분은 처분 대상이 아닌 점포를 상대로 한 것이어서 잘못이다. 둘째, 임대매장은 소매점이 아니라 서비스용역을 제공하는 시설로 위 대형마트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이들의 영업까지 제한하는 것은 잘못이다. 셋째, 피고의 재량권 행사는 ‘외국 기업의 국내 서비스 공급량 제한을 금지’한 GATS 등 조항에 위배돼 위법하다. 넷째, 이 사건 처분에 공·사익 형량 요소에 대한 재량권 불행사·해태 및 비례원칙 위반(맞벌이 부부 등의 소비자선택권 과도하게 제한)으로 인한 재량권 일탈·남용의 위법이 있다. 따라서 피고의 영업제한 처분은 취소돼야 한다는 것이다.

大法 “행정기관, 재량권 남용 안해”

그러나 대법원은 원심의 논거를 배척하며 다음과 같이 판시했다. 첫째, 대형마트에 해당하는지는 개설 등록된 형식에 따라 대규모 점포를 일체로서 판단하면 되므로 대규모 점포를 구성하는 개별 점포의 실질이 대형마트 요건에 부합하는지 살필 필요가 없다. 둘째, 법령상 영업제한 처분 상대방은 대규모 점포 등의 유지·관리를 책임지는 개설자에게 한정되고 임대매장 임차인은 별도의 상대방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처분청이 임대매장 임차인에게 사전통지나 의견 진술의 기회를 주지 않아도 절차상 잘못이 없다. 셋째, GATS 등의 협정은 국가 간 권리·의무 관계를 설정하는 국제협정이므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사인(私人)에 대해서는 협정의 효력이 직접 미치지 않는다. 그러므로 협정 위반을 처분 취소의 이유로 주장할 수 없다. 넷째, 유통산업발전법의 영업제한 조항은 영업시간 등의 제한이 중소사업자 보호라는 공익 목적 달성에 유효적절한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정책적 판단에 따라 이뤄진 규제 입법에 해당하고, 행정청에 사실상 매우 제한된 범위 내에서 규제수단을 선택할 재량을 부여하고 있으므로, 행정청으로서는 대체로 유사한 내용의 규제를 할 수밖에 없다. 대법원은 이번 행정처분이 재량권을 일탈·남용했다고 섣불리 판단해서는 안 된다며 구청장의 영업제한 처분은 적법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상인 위한 소비자 통제를 인정

이로써 대형마트 등의 영업제한에 관한 논란은 적어도 소송 차원에서는 일단락됐다. 그러나 이런 결과가 민주주의 원리에 부합하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대형마트 등의 영업이 제한되면 소비자 역시 그 점포 이용이 제한된다. 그러니 대형마트 등에 대한 규제는 해당 기업뿐만 아니라 소비자에 대해서도 규제가 되는 것이다. 이런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 대법원 판결을 계기로 국가가 특정 계층 상인을 보호하기 위해 소비자를 통제하는 것이 정당하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 기업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의 법률이 공인된 것이다.

선진국 어느 나라에도 중소사업자를 보호하기 위해 대규모 점포의 영업을 제한하는 법은 없다. 그들 국가에도 보호가 필요한 중소사업자가 있을 텐데 왜 그런 법이 없을까. 정치인들이 국민으로부터 소비자 편이냐 기업 편이냐 하는 양자택일을 요구받기 때문이다. 즉 그들 국가의 국민은 소비자의 이익을 저해하는 정치인에게는 표를 주지 않고 낙선시키기 때문이다. 대형마트 등의 영업제한은 주로 중소상인을 보호하기 위해 법제화됐다. 당시는 경제민주화 열풍 속에 대기업의 탐욕과 우월적 지위 남용이 개혁의 도마에 올라 있었다. 특히 대형마트 등이 영세상인 생존을 위협한다는 비난이 비등했으며, 조직화된 상인단체들이 이를 선거에서 압력 수단으로 이용하기도 했다. 국민은 정치민주화를 이룩한 것처럼 경제 분야에서도 민주화가 이뤄지기를 바라며, 중소상인을 보호하기 위해 대형마트 등의 영업을 제한하는 데 동의했다. 이 사건 대법원 판결은 그런 사회적 분위기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내려졌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가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의문이다.

美 금주법처럼 사라질 것

우리 사회는 1인 가구와 맞벌이 부부가 늘면서 일상적 소비생활의 패턴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또 그럴듯한 명분이나 구호보다는 먹고, 마시고, 입고, 쉬는 일상의 삶과 직결되는 생활정치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고 있다. 이런 소비자로서의 각성이 실제 선거에서 투표로 이어지는 날이 오면 지금과 같은 영업제한법이 존속하기 어려운 상황이 도래할 수 있다. 마치 미국에서 한때 열광적으로 지지받고 헌법의 지위에까지 올랐던 금주법(The Prohibition Law)이 역사속으로 사라진 것처럼.

■ 선진국선 종교·근로자 보호 등으로 영업제한

외국에도 중소사업자를 보호하기 위해 대규모 점포의 영업을 제한하는 법이 있을까. 미국의 일부 주(州)에 일요일 영업금지법(Blue Law)이 있지만 이는 주로 종교적 이유에 기인한다.

독일에는 모든 상점이 일요일과 공휴일에 문을 닫고 그 밖의 날에는 오전 6시부터 오후 8시까지만 영업하도록 하는 상점폐점법이 있다. 그러나 이는 모든 상점을 대상으로 하고 또 근로자의 건강 및 휴식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어서 중소유통업자 보호와는 무관하다.

영국은 280㎡ 이상의 점포가 일요일 오전 10시~오후 6시 중 연속해 6시간 이내에서만 영업하도록 하는 일요일 영업제한법(Sunday Trading Act)이 있다. 이 역시 중소유통업자 보호가 아니라 종교적 이유 및 근로자의 건강권을 보호하려는 것이다.

최영홍 < 고려대 로스쿨 교수·한국유통법학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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